문헌학

교감기 읽는 법, 아래쪽 각주 한 줄에서 편집자의 판단을 꺼내는 순서

editor220308 2026. 1. 4. 20:05

교감기(비평장치)는 다른 판본·사본의 이문을 압축해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레마, 이문, 시글럼을 읽는 순서를 잡으면 ‘어느 근거로 본문이 정해졌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교감기 읽는 법, 아래쪽 각주 한 줄에서 편집자의 판단을 꺼내는 순서

 

 

처음 교감 기를 펼치면, 솔직히 “각주가 왜 이렇게 복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교감 기는 어렵기보다 친절한 편입니다.

편집자가 본문을 고르면서 지나간 흔적을 숨기지 않고, 독자가 다시 확인할 수 있게 열어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학술 편집본에서 교감기(critical apparatus, apparatus criticus)는 보통 본문 아래쪽에 달리며, 한 줄 안에 “이 대목에서 자료들이 어떻게 갈렸는지”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용어 풀이

교감기(비평장치): 한 작품의 전승 자료(사본·판본)들 사이에 다른 읽기(이문)가 있을 때, 그 차이를 규칙적인 약호로 정리해 둔 장치입니다. 독자는 교감 기를 통해 편집자의 선택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교감기 한 줄을 볼 때, 저는 ‘순서’를 먼저 정합니다


교감기 해독은 재능보다 습관에 가깝습니다. 무작정 읽으려 하면 약호가 벽처럼 보이지만, 항상 같은 순서로 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첫째, 위치부터 잡습니다.

책마다 표기 방식은 다르지만 대개 쪽, 행, 절 같은 좌표가 있습니다.

그 좌표가 있어야 “지금 이 각주가 어느 단어를 말하는지”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레마를 확인합니다.

레마는 지금 편집본 본문에 실린 형태이거나, 최소한 “이 각주가 걸리는 본문 구간의 머리표” 역할을 합니다. 


셋째, 그다음에 이문들을 봅니다.

레마 옆에 나열되는 다른 읽기들이 이문입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누가 그 읽기를 지지하는지”를 확인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시글럼을 읽는 단계입니다.

 

용어 풀이

레마(lemma): 본문에 채택된 읽기, 또는 장치가 걸린 본문 구간을 가리키는 기준 표기입니다. 교감기 항목의 출발점이 됩니다. 

 

시글럼을 모르면, 교감기 내용이 아니라 ‘인물 소개’를 놓친 겁니다


교감 기는 결국 “자료들의 증언 비교”입니다.

그런데 교감 기는 공간을 아끼기 위해, 사본, 판본 이름을 길게 쓰지 않고 약호로 줄여 씁니다.

 

그 약호가 시글럼(siglum)입니다.

시글럼은 보통 서문이나 약어표에 정리돼 있고, 거기에는 각 자료의 성격도 같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시글럼표는 단순한 ‘기호 목록’이 아니라, 이 편집본이 어떤 자료를 어떻게 묶어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습니다. 

 

용어 풀이

시글럼(siglum):사본·판본 같은 증거 자료를 반복 표기하기 위해 부여하는 약호입니다.

교감기에서 “누가 그렇게 전하는지”를 나타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2026.01.02 - [문헌학] - 1차 2차 3차 자료 구분법-문헌학 글에서 출처 신뢰도를 높이는 기준

 

1차 2차 3차 자료 구분법-문헌학 글에서 출처 신뢰도를 높이는 기준

문헌학 글의 신뢰는 출처를 많이 적는 것보다 “무슨 종류의 자료를 근거로 했는지”에서 갈립니다.1차 2차 3차 자료를 쉬운 예로 구분하고, 정본, 판본, 사본, 웹자료를 어떤 순서로 확인하면 좋

sy21chichi.com

 

교감 기를 읽을 때 흔히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자료를 전부 같은 무게로 두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어떤 읽기는 사본 단계에서부터 이어진 것일 수 있고, 어떤 읽기는 후대 활자본에서 정착된 것일 수 있어서, 출처의 층위에 따라

해석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의 등급을 먼저 구분해 두면, 왜 같은 대목이 다르게 전해지는지 독자가 훨씬 빠르게 따라올 수 있습니다.

 

초보가 특히 헷갈리는 지점은 ‘다수결’과 ‘약어 추측’입니다


교감 기를 보다 보면 어떤 읽기는 지지하는 자료가 많고, 어떤 읽기는 자료가 적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많은 쪽이 맞나 보다”로 넘어가기 쉬운데, 텍스트 전승은 늘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특정 계통의 오류가 여러 자료에 퍼져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소수 자료가 더 오래된 형태를 보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감 기는 그 갈림을 보여줄 뿐, 자동으로 정답을 주진 않습니다.

 

또 하나는 약어를 추측하는 습관입니다.

conj., corr., del. 같은 표기는 편집자의 개입이나 처리 방식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책마다 약어 관행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모르면 “감으로 해석”하기보다 약어표로 되돌아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TEI 같은 디지털 편집 표준에서도 레마와 이문을 분리해 기록하는 논리가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규칙을 공유해야 검증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쓰기 좋은 방식으로, 교감 기를 ‘내 말’로 정리하는 요령

교감 기를 본문에 옮길 때는 전체를 번역해 붙이기보다, 핵심만 추려 근거가 남도록 정리하는 편이 훨씬 읽기 편합니다.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독자가 판단에 필요한 재료(대안 읽기, 자료 근거, 편집 처리)를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다만 같은 형식을 계속 반복하면 문장이 딱딱해 보일 수 있으니, 끝에 한두 문장으로 “나는 무엇을 선택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덧붙여 흐름을 마무리하면 좋습니다.

 

바로 적용 가능한 정리 방식(항목 누락 방지용)


첫째, 어디 구간인지 한 문장으로 찍습니다.
둘째, 본문 채택 읽기(레마)를 적습니다.
셋째, 대안 읽기(이문)를 짧게 나열합니다.
넷째, 각 읽기를 지지하는 자료(시글럼)를 붙입니다.
다섯째, 편집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만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목에서 본문이 “봄날”을 택했는데 다른 자료에는 “봄”과 “봄에”가 보인다고 합시다.

그러면 블로그에서는 “이 구간은 자료들이 셋으로 갈리며, 편집본은 ‘봄날’을 택했다.

다른 읽기도 자료 근거가 있어서 문맥과 계통을 함께 봐야 한다” 정도로만 써도 충분합니다.

독자는 “아, 그냥 감으로 고른 게 아니구나”를 바로 이해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2026.01.03 - [문헌학] - 표점과 띄어쓰기의 문제, 편집이 의미를 바꾸는 사례

 

표점과 띄어쓰기의 문제, 편집이 의미를 바꾸는 사례

쉼표 하나, 띄어쓰기 한 칸이 문장의 책임 주체와 적용 범위, 어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문헌학에서는 표점과 띄어쓰기를 단순한 교정이 아니라 편집 선택으로 보고 확인합니다.의미가 달라지는

sy21chichi.com

 

교감기를 보다 보면 단어가 달라지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라, 표점이나 띄어쓰기처럼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이문으로 기록된 대목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례는 “편집상의 작은 결정이 어떻게 의미를 바꾸는지”를 설명하기에 특히 좋습니다.

그래서 해당 주제를 다룬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 주면, 교감기 설명이 훨씬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정리됩니다.

 

디지털 교감기에서 더 선명해지는 핵심, 레마와 이문의 분리


인쇄본 교감 기는 각주 한 줄로 압축하지만, 디지털 편집에서는 그 구조를 태그로 분해해 저장합니다.

TEI에서는 변이를 하나의 안에 두고, 본문 채택 읽기를 , 다른 읽기를 로 기록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결국 형태만 다를 뿐, 교감기가 하는 일은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자료들이 어떻게 갈렸는지”를 투명하게 남기는 일입니다. 

 

용어 풀이

TEI: 인문학 텍스트를 디지털로 구조화해 기록하는 국제 표준 가이드라인입니다.

교감기 정보도 레마와 이문을 분리해 표현합니다. 

 

마무리로, 교감 기를 읽는 습관은 결국 “편집자를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을지 말지를 내가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이라도 교감 기를 직접 풀어 보면, 본문은 그냥 인쇄된 문장이 아니라 여러 자료의 증언을 정리해 만든 ‘선택의 결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본문 한 줄을 인용할 때도 “왜 이 읽기가 채택됐는지”를 확인한 흔적이 남고, 그 한 줄이 글 전체의

신뢰도를 조용히 끌어올립니다.

 

결국 독자가 믿는 건 문장 자체가 아니라, 그 문장을 다루는 내 태도와 근거입니다.

 

 

자주 하는 질문(FAQ)


Q. 교감기가 없는 대중판은 피해야 하나요?
A.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교감기가 없으면 “왜 이 본문을 골랐는지”를 독자가 바로 확인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정확 인용이나 논점이 걸린 구절을 다룰 때만 교감기 있는 편집본을 병행하면 됩니다.

 

Q. 이문이 많으면 그 편집본이 불친절한 건가요?
A.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문이 많다는 건 전승이 복잡하다는 뜻이고, 그럴수록 근거를 공개하는 교감기의 역할이

커집니다. 

 

Q. 시글럼은 다 외워야 하나요?
A. 외우기보다 약어표를 빠르게 찾아가는 습관이 더 실용적입니다. 익숙해지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Q. 레마와 이문을 구분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본문에 실린 형태가 무엇이고, 그 대안이 무엇인지가 분리돼야 논쟁이 생겨도 같은 지점에서 토론이 가능합니다. TEI가 과 를 분리해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관련참고자료

 

 

TEI P5 가이드라인: Critical Apparatus 모듈 개요 Text Encoding Initiative

TEI P5: lem(lemma) 요소 설명 Text Encoding Initiative

TEI P5: Critical Apparatus(lem/rdg/app 구조) 설명 Quod

Traditio 저널 스타일시트(비평장치 표기 실무 관행 예시) 포드햄 대학교

약어·관행 예시(라틴 약어/기호의 의미 참고) Anti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