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비평판) 하단의 교감기(주석)를 처음 보는 독자를 위해, 교감기의 기본 구조와 읽는 순서를 쉬운 예시로 정리합니다.
증인 약어(시글라), 본문 채택 표시, 변이(다른 읽기) 확인법까지 체크리스트로 안내합니다.

정본의 하단 주석이 ‘장식’이 아니라 ‘근거’인 이유
정본을 처음 펼치면 본문 아래쪽(또는 권말)에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힌 주석이 보입니다.
많은 독자가 그 부분을 “전문가 영역”이라며 건너뛰는데, 사실 그 주석(교감기)은 정본이 신뢰를 얻는 핵심 장치입니다.
본문이 ‘결론’이라면, 교감 기는 그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는 ‘근거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교감 기를 전부 해독하자는 목표가 아니라, 최소한의 규칙만 익혀 “내가 인용하려는 대목이 다른 판에서 어떻게 달랐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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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기란 무엇인가-본문 선택의 “증거 표”
교감기는 정본 본문과 다른 사본·판본의 표현을 정리해 둔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자료가 어떤 표현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압축된 형태로 들어갑니다.
교감기가 있으면 독자는 편집자의 선택을 그대로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료의 분포를 보고
“이 선택이 합리적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용어풀이
(교감기): 본문과 다른 읽기(표현)를 자료별로 정리해 둔 주석(대개 하단/권말)입니다.
용어풀이
(읽기): 같은 자리(같은 단어/구절 위치)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표현(버전)입니다.
교감기의 기본 뼈대 4가지: 이것만 구분되면 절반은 끝납니다
교감기의 표기는 출판사·편집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뼈대는 대체로 네 요소로 구성됩니다.
첫째, 위치 정보(어느 자리의 문제인가)
장·절·쪽·행 번호처럼 “본문의 어디”를 가리키는 표지가 먼저 옵니다.
둘째, 본문 채택 표현(편집자가 본문에 실은 형태)
보통 “본문에 실린 형태”를 먼저 제시합니다. 어떤 편집자는 이 부분을 ‘레마’라고 부릅니다.
용어풀이
(레마/lemma): 교감기에서 “이번 정본 본문이 채택한 표현”을 가리키는 기준 항목입니다.
셋째, 구분 표지(여기부터가 비교 자료 이야기)
대괄호, 쉼표, 콜론 등 방식은 달라도 “이제부터는 다른 읽기 목록”이라는 경계가 나옵니다.
넷째, 다른 읽기 목록 + 그 읽기를 가진 자료(증인)
핵심은 여기입니다. “다른 표현이 무엇인지”와 “그 표현을 가진 자료가 무엇인지”가 함께 붙습니다.
용어풀이
(증인/witness): 특정 텍스트 상태를 담고 있는 개별 자료(사본/판본) 한 종입니다.
용어풀이
(시글라/sigla): 증인 이름을 길게 쓰지 않고 A, B, C처럼 약어로 표시한 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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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용 5분 루틴: ‘한 구절’만 골라 교감기에서 확인하는 방법
교감 기를 공부하듯 읽기 시작하면 금방 지칩니다.
대신 한 구절만 골라, 아래 순서대로 확인하면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 본문에서 “해석에 영향 주는 단어/구절” 하나를 고릅니다.
예: 의미가 갈릴 수 있는 한 단어, 문장 주어가 바뀌는 부분, 부정어가 있는 자리 등. - 그 자리의 위치 표지를 찾습니다.
쪽/행, 장/절 등 정본이 쓰는 기준을 따릅니다. - 교감기에서 같은 위치를 찾아 ‘레마’를 확인합니다.
“정본 본문이 무엇을 채택했는지”를 먼저 고정합니다. - 그 아래에 “다른 읽기”가 있는지 봅니다.
다른 읽기가 없다면, 최소한 “주요 자료에서는 큰 변이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다른 읽기가 있다면, 딱 두 가지만 적습니다.
첫째,다른 표현이 무엇인지 둘째, 그 표현을 지지하는 증인(시글라)이 무엇인지
이 두 줄만 메모해도, 글의 근거 수준이 달라집니다.
교감기 약어·기호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교감기에 라틴어 약어가 나오거나 기호가 복잡한 이유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편집자마다 약어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안전한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정본의 서문/서설에 실린 “시글라 목록(약어표)”과 “기호 설명”을 먼저 찾아두는 것입니다.
용어풀이
(약어표/시글라 목록): A, B, C 같은 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어느 사본/판본인지) 정리해 둔 안내표입니다.
초보자에게 특히 중요한 ‘기능’만 분류로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 생략/누락을 표시하는 기능(어떤 자료에는 그 단어가 없음)
- 추가를 표시하는 기능(어떤 자료에는 단어가 더 붙음)
- 교정을 표시하는 기능(후대 손이 고쳐 쓴 흔적)
- 편집자 판단을 표시하는 기능(불확실, 추정, 제안 등)
여기서 핵심은 “그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보다, “그 기호가 나오면 본문이 단순 복사가 아니라 판단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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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에서 교감 기를 ‘가치 있게’ 쓰는 3가지 방식
교감기를 언급한다고 해서 글이 어려워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래처럼 쓰면 독자는 “검증 가능한 설명”을 받는다고 느낍니다.
1. 기준판을 먼저 고정하고, 교감 기는 ‘중요 대목’에서만 언급
“이 글은 ㅇㅇ정본을 기준으로 하며, 핵심 구절은 하단 주석(교감기)에서 다른 읽기를 확인했습니다.”
2. 다른 읽기가 ‘해석에 영향 줄 때’만 한 줄 추가
“다른 판에서는 이 자리에 ㅇㅇ로도 전해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과장 대신 범위를 밝히기
“모든 이본을 검토했다” 같은 문장보다, “이 구절은 A·B 계열에서 차이가 있어 해당 정본의 주석을 근거로 정리했다”처럼
범위를 좁혀 쓰는 편이 신뢰도가 높습니다.
교감 기는 ‘전문가 장식’이 아니라 ‘독자 권리’입니다
정본의 하단 주석은 어려워 보이지만, 목적은 단순합니다.
본문 선택의 근거를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것. 독자 입장에서는 교감 기를 통해 “다른 자료에서는 어떻게 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줄의 근거만으로도 설명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오늘은 교감 기를 완독 하려 하지 말고, 한 구절만 골라 5분 루틴을 적용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자주 하는 질문(FAQ)
Q1. 교감기가 없으면 그 책은 정본이 아닌가요?
A. 일반 독서용 편집본은 교감 기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근거가 필요한 글(해설·비평·연구 성격)에서는 교감기 또는 선택 근거가 제시된 판이 더 유리합니다.
Q2. 교감기 약어가 너무 다른데, 외워야 하나요?
A. 외우기보다 ‘그 책의 약어표(시글라 목록)’를 찾는 습관이 안전합니다.
편집자마다 표기가 달라 통일된 암기법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Q3. 교감기에서 무엇을 확인하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나요?
A. 초보 단계에서는 (1) 본문이 무엇을 채택했는지(레마) (2) 다른 읽기가 있는지 (3) 그 다른 읽기를 지지하는 증인이 누구인지,
이 세 가지만 확인해도 충분합니다.
Q4. 다른 읽기가 많으면 어떤 걸 따라야 하나요?
A. 우선은 정본 서문에 적힌 편집 원칙을 봐야 합니다. 어떤 계열을 우선하는지, 오자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본문 선택의
이유가 달라집니다.
Q5. 오염(혼합 전승)이 있으면 교감기가 더 복잡해지나요?
A. 그럴 수 있습니다. 한 증인 안에 다른 계열 읽기가 섞이면 분포가 깔끔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를 서문에서 설명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6. 블로그 글에 교감기까지 언급하면 독자가 더 어렵게 느끼지 않을까요?
A. ‘한 구절’만, ‘한 줄’로 처리하면 오히려 신뢰도가 올라가면서도 난이도는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핵심은 과장하지 않고 범위를 밝히는 것입니다.
관련 참고자료
MLA, Guidelines for Editors of Scholarly Editions. Modern Language Association
University of Toronto Centre for Medieval Studies, Guide to Text Editions (PDF, critical apparatus 섹션 포함). 중세 연구소
TEI Guidelines, “Critical Apparatus” (텍스트 변이·증인 표기 구조). Text Encoding Initiative
Oxford Reference, “Critical apparatus” (용어 사전 정의). 옥스퍼드 레퍼런스
A Guide to the Use of the BHS Critical Apparatus (PDF, apparatus 및 sigla 읽기 예시). Bethel People
Marquette University, Apparatus Guide (PDF, 기호·약어 구조 설명 예시). marquette.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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